종로 골목 끝에서 만난 애매한 고깃집의 밤

종로 골목 끝에서 만난 애매한 고깃집의 밤

서순라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식당

지난주 금요일인가, 퇴근하고 무작정 종로 쪽으로 향했다. 요즘 서순라길이 워낙 핫하다고 해서 가보긴 했는데 사람이 정말 많더라. 유명하다는 카페들은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고, 길가에 세워진 작은 간이 의자들까지 사람들로 북적여서 걷는 것 자체가 좀 피곤하게 느껴졌다.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자 싶어서 인파를 벗어나 골목길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 이름도 가물가물한 오래된 삼겹살집이었다. 겉에서 보기에 딱히 유명 맛집 같지는 않았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연기 자욱한 풍경이 왠지 모르게 끌렸던 것 같다. 가게 안은 낡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한돈 삼겹살과 익숙하지 않은 더덕구이

메뉴판을 보니 한돈 삼겹살이 1인분에 18,000원 정도였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다고 하기도 애매한 가격대였다. 배가 고파서 일단 삼겹살 2인분을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더덕구이를 같이 먹어보라고 은근히 권하셨다. 평소에 더덕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불판에 같이 구워 먹으면 향이 좋다는 말에 팔랑귀처럼 넘어갔다. 그런데 막상 구워보니 더덕이 금방 타버려서 굽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고기 챙기랴, 더덕 뒤집으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맛은 있었는데, 사실 고기 맛에 집중하기보다는 타지 않게 감시하느라 더 애를 먹었던 것 같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느낀 피로감

옆 테이블에서는 회식을 하는지 목소리가 너무 컸다. 종각 쪽은 원래 회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감안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지르듯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에 내 목소리도 묻히고, 무엇보다 식당 안이 너무 더웠다. 여름이라 에어컨을 틀어놓긴 했는데, 불판 열기 때문에 큰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땀을 닦으면서 고기를 먹고 있으니 이게 즐거운 저녁인지, 아니면 그냥 견디고 있는 건지 잠시 헷갈렸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그런지 꾸역꾸역 다 먹긴 했다. 이런 게 종로 노포의 낭만인가 싶다가도, 그냥 좀 시원하고 조용한 데서 먹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우렁된장라면의 예상치 못한 한 방

고기를 다 먹어갈 때쯤, 메뉴판 구석에 있던 우렁된장라면을 주문했다. 이게 의외였다. 삼겹살집에서 라면이라니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된장 베이스 국물이 생각보다 진해서 고기로 느끼해진 속을 싹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우렁도 꽤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씹는 맛도 있고, 이거 하나로 앞선 피로감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랄까. 가격이 7,000원이었는데 고기보다 이게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마지막 소주 한 잔을 비울 때는 처음에 느꼈던 짜증도 조금 옅어졌다.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나오는 길에 보니 서순라길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적당히 배도 부르고 술도 한 잔 들어가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는데, 다음에 친구들이랑 종로에서 다시 만난다면 여기를 또 올지는 잘 모르겠다. 맛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렇다고 굳이 다시 찾아와서 줄을 서거나 덥고 시끄러운 환경을 감수할 정도인지는 판단이 안 선다. 그냥 그날따라 배가 고팠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한 끼를 때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다음번엔 좀 더 조용한 동네로 가볼까 싶기도 하다가, 또 종로 특유의 그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생각나서 다시 골목을 서성거릴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참 애매하게 남는다.

댓글 3
  • 더덕구이, 생각보다 구기가 정말 까다로웠던 것 같아요. 저는 보통 이런 경우, 고기는 좀 덜 익혀 먹는 편인데…

  • 우렁된장라면 진짜 신기하네요! 고기 때문에 더 느껴지는 느끼함이 싹 가시더라고요.

  • 더덕구이는 정말 신기했어요. 제가 더덕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메뉴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