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 앱에 찍힌 별표가 너무 많아 문제인 날
며칠 전부터 친구랑 강남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근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어디를 가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거다. 나도 나름대로 평소에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곳들을 지도 앱에 잔뜩 저장해두는데, 그게 너무 많아지니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어떤 곳은 3년 전에 친구가 괜찮다고 했던 곳이고, 어떤 곳은 그냥 지나가다가 느낌이 좋아서 눌러둔 곳들이다. 막상 저녁 7시가 다가오니까 그 수많은 별표 중에 뭐가 좋을지 결정이 안 됐다. 결국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자마자 둘 다 ‘뭐 먹지?’만 반복하다가 30분을 길거리에 서 있었다. AI가 알아서 식당도 추천해주고 예약까지 해주는 세상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그 많은 정보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는 기분이었다.
대충 들어간 고깃집에서 겪은 당황스러움
결국 고민하다가 적당히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뱅뱅사거리 근처였는데 이름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냥 간판이 커서 들어갔던 것 같다. 메뉴판을 펼치니 육사시미랑 삼겹살을 같이 팔더라. 육사시미를 좋아해서 2만 원 중반대 가격을 보고 냉큼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서 당황했다. 한 점씩 집어 먹으니 금방 바닥을 보였다. 옆 테이블은 왁자지껄하게 회식을 하는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친구랑 대화하려면 목청을 높여야 했다. 분명 맛집이라고 저장해뒀던 리스트 중 하나였을 텐데, 왜 내 기억 속의 이미지랑 실제 상황은 이렇게 다른 걸까. 그냥 집 근처에 있는 익숙한 고기집 갈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괜히 새로운 곳 찾아보겠다고 설쳤나 후회가 들었다.
대기 시간 1시간의 딜레마
고기를 대충 먹고 나와서 카페라도 가려니 어딜 가나 사람이 꽉 차 있었다. 강남역 근처는 평일 저녁에도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평소엔 조용한 곳을 좋아하면서, 정작 찾을 때는 ‘분위기 좋은 곳’을 검색창에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좀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어떤 카페는 대기 줄이 1시간이나 된다길래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 예전에 종로 쪽에서 밥 먹을 때는 이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강남만 오면 이상하게 전투적으로 맛집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그냥 근처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 하나씩 들고 서 있어도 좋았을 날씨였는데, 왜 그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야만 성공적인 저녁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되었을 정보의 과잉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친구가 ‘다음에는 그냥 검색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데 들어가자’고 했다. 그 말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명쾌한 해결책처럼 들렸다. 요즘은 맛집 하나를 고르려고 해도 블로그 리뷰를 수십 개씩 읽고, 혹시 광고는 아닐까 의심하면서 정보를 걸러내는 과정 자체가 너무 지친다. 누군가 내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오늘 여기 가’라고 딱 한 곳만 지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기술이 있어도, 나는 또 다른 의심을 하면서 그 추천을 무시하고 직접 검색창을 열 것만 같다. 강남역 3번 출구 근처에 있는 저렴한 돈까스 집이나 5번 출구의 라면집 같은 곳들이 사실 제일 마음 편한 곳인데, 왜 자꾸 특별한 곳을 찾아 헤매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마무리되지 않은 저녁의 피로함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고기 냄새가 옷에 다 배어 있었다. 오늘 하루는 뭔가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남은 건 피로감뿐인 것 같다. 다음번엔 진짜 그냥 아무 계획 없이 나가볼 생각이다. 물론 친구가 먼저 ‘어디 갈 거야?’라고 물어보면 또 지도 앱을 켜겠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씩은 힘을 빼고 싶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결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만 오늘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굳이 최고의 맛집을 찾지 않아도, 그냥 친구랑 아무 말 없이 걷다가 들어간 곳에서 먹은 밥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인데 말이다. 아직도 어디가 더 나았을지 고민되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