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어느 골목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밤

첨단 어느 골목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밤

지난주 금요일이었나, 퇴근하고 나서 갑자기 맥주 한 잔이 간절해져서 집 근처 첨단지구로 나갔다. 예전에는 동네에 그냥 적당한 치킨집이나 호프집이 많았는데, 요즘은 어딜 가나 소위 말하는 ‘감성주점’들이 너무 많다. 조명은 지나치게 어둡고, 노래는 너무 커서 옆 사람 말이 잘 들리지도 않는 그런 곳들 말이다. 그냥 조용히 맥주나 한잔하고 싶었는데 들어간 곳이 하필 그런 분위기였다.

메뉴판을 보다가 든 생각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이 무슨 책자처럼 두껍다. 안주 가격을 보니 보통 어묵탕 하나에 2만 3천 원 정도 하더라. 예전에는 술집에서 어묵탕 시키면 싼 맛에 먹는 거 아니었나 싶다가도, 요즘 물가가 워낙 오르니 그러려니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자카야 창업이니 뭐니 해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비슷비슷한 주점들이 다 거기서 거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파닥거리는 인테리어 소품들이나 괜히 비싼 하이볼 가격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여기 들어왔나 싶기도 했다. 광주 근교 가볼 만한 곳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그냥 동네 술집 치고는 과하게 힘을 준 느낌이랄까.

신분증 검사와 이상한 긴장감

술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직원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한 손님이 휴대폰을 슥 내미는 거다. 요즘은 모바일 신분증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직원이 그걸 보고도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나중에 들으니 요즘은 남의 모바일 신분증을 찍어서 보여주거나 아예 타인 걸 보여주는 미성년자들이 많아서 아예 사장들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예전에 아는 지인이 감성주점을 하다가 미성년자 신고 때문에 장사를 접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님과 직원 사이에 흐르는 그 묘한 냉기가 참 불편했다.

시끄러운 음악과 차가운 안주

안주로 시킨 어묵탕은 금방 나왔는데, 국물 맛은 평범했다. 사실 이런 데서 엄청난 미식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상관은 없는데, 문제는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고성방가였다. 좁은 공간에 억지로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놔서 그런지 대화가 전혀 불가능했다. 하이트진로 같은 데서 나오는 신상 맥주나 제로 슈거 소주가 요즘 대세라지만, 여기서 마시는 술 맛이 특별할 게 뭐가 있겠나. 그냥 분위기에 취하러 오는 거라는데, 나는 영 그 분위기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맥주 한 병 더 시키려다 그냥 일어날까 고민만 한참을 했다.

결국 다시 편의점으로

결국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다가 나왔다. 가격은 3만 원이 훌쩍 넘게 나왔는데, 사실 배가 부르지도 않았고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샀다. 요즘 편의점 맥주 행사가 4캔에 만 원 하던 게 이제는 11,000원이나 12,000원까지 올랐더라. 그래도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면서 마시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우리가 왜 그렇게 감성주점을 찾아 헤매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좀 더 밝고, 대화가 잘 통하고, 덜 붐비는 곳을 찾고 싶은데 그런 곳은 이제 지도 앱에서도 잘 안 보인다. 이 동네 분위기가 너무 빠르게 변해서 그런지, 가끔은 예전의 그 평범한 호프집이 그리워진다. 다음에는 그냥 집 근처 마트에서 안주를 직접 사다가 먹을 생각이다. 그게 훨씬 경제적이고 무엇보다 내가 편하니까. 아직도 그 주점에서 마신 맥주가 왜 그렇게 비싸게 느껴졌는지 잘 모르겠다.

댓글 3
  • 사진만 보면 진짜 어둡고 시끄러운 곳이네요. 저는 오히려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작은 술집이 더 좋더라고요.

  • 어묵탕 가격이 정말 놀랐네요. 저도 최근 비슷한 경험 때문에 물가 때문에 그런지,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 모바일 신분증 때문에 사장님들이 힘드시겠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요즘은 술집 가는 게 좀 망설여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