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메뉴판을 채우다 보니 어느새 가공식품 박스가 쌓여있었다

가게 메뉴판을 채우다 보니 어느새 가공식품 박스가 쌓여있었다

원팩 시스템의 묘한 허무함

처음 포차를 구상했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주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직접 해산물 손질도 하고, 나만의 비법 양념장도 만들어서 손님들한테 ‘이게 우리 집 시그니처예요’라고 자신 있게 내놓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창업 준비를 해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주방 인력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재료비를 생각하면 단가를 맞추기도 버겁더라. 결국 주변에서 많이들 한다는 프랜차이즈나 원팩 시스템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지금은 뭐, 포차천국 같은 곳에서 광고하는 것처럼 본사에서 오는 팩을 뜯어서 데우는 게 일상의 절반이다. 가끔씩 손님이 ‘이거 직접 만든 거예요?’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살짝 멍해질 때가 있다. 물론 맛있다고 해주시니 다행이긴 한데, 이게 내 요리인지 그냥 가공식품을 잘 데워 내는 기술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2천만 원 지원금이라는 문구 앞에서

최근에 뉴스를 보는데 더본코리아 같은 큰 프랜차이즈도 폐점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가맹점주들한테 폐점 지원금을 주네 마네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사실 나도 처음 시작할 때 1억 정도는 있어야 숨통이 트일 줄 알았는데, 인테리어하고 초기 비용 쓰고 나니 남는 건 대출뿐이더라. 빽보이피자나 한신포차 같은 브랜드도 상황이 이렇다는데, 나 같은 개인 창업자는 오죽할까 싶었다. 어쩌다 동네 아저씨들이 와서 ‘요즘 장사 어때?’라고 물으면 그냥 웃고 넘기지만, 속으로는 매달 나가는 월세랑 재료비 계산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2천만 원 지원금이라… 그게 있으면 당장 이번 달 전기세 걱정은 덜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혼술바의 유행과 우리가 나아갈 곳

요즘 2030들은 혼술바나 조용한 곳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헌팅포차 같은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술과 대화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는데, 내가 운영하는 실내포차는 그 중간 어디쯤인 것 같다. 가끔 혼자 오시는 손님들을 보면 1만 원 내외의 가벼운 안주를 찾으시는데, 그런 분들한테 거창한 메뉴를 팔기도 좀 그렇고 메뉴판을 다시 짜야 하나 고민이다. ‘야화’ 같은 혼술바 브랜드가 전국에 수십 곳씩 계약을 따낸다는 걸 보면 확실히 흐름이 변하긴 했다. 내 가게는 원래 북적이는 느낌을 생각하고 인테리어를 했는데, 이제 와서 조용한 분위기로 바꾸려니 돈도 돈이고 컨셉도 애매해질 것 같아서 그냥 둔다. 나중에 혹시나 업종 변경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작은 평수에 혼술 위주로 해볼까 싶기도 하다.

세무사와 고민하는 창업의 끝

사업자 등록을 하러 세무사한테 물어봤을 때가 생각난다. 일반 과세로 할지 간이 과세로 할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줄은 몰랐다. 처음엔 간이 과세로 해서 세금을 좀 줄여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인테리어 비용이나 집기 살 때 환급받으려면 일반 과세가 낫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시작부터 복잡한 서류와 씨름해야 했다. 세액 감면 혜택 같은 거 챙기느라 서류 몇 장 더 넣었는데, 이게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복잡하기만 한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오늘도 롯데웰푸드 팝업 소식을 보면서 괜히 창업이라는 게 공연이나 체험처럼 즐기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열리는 청년 포차 행사를 보면서, 저런 젊은 패기가 우리 가게에도 좀 남아있는지 싶다가도 그냥 퇴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쩌다 보니 시작된 포차 운영

냉동실을 열어보면 죄다 가공식품 박스뿐이다. 한냥노가리 같은 메뉴는 대충 구워서 나가면 그만이라 편하긴 한데, 이게 맞는 건지 가끔 회의감이 든다. 다음 달에는 메뉴를 좀 늘려볼까 싶다가도, 결국 또 원팩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걸 알기에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 주변 술집들은 벌써 메뉴판을 몇 번씩 바꿨다던데, 나는 아직도 처음 만들어둔 메뉴판 그대로다. 바꾼다고 손님이 확 늘어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하루하루 그럭저럭 버티는 게 최선인가 싶다. 이 고민이 언젠가 해결될지, 아니면 그냥 이게 내 일상이 되어버릴지 아직은 모르겠다.

댓글 3
  • 가공식품을 데우는 게 대부분이라, 처음 꿈꿨던 손맛은 좀 더뎌진 것 같아요.

  • 가공식품 팩만 계속 먹는 기분이네요. 직접 만들던 로망이 아쉽게 느껴져요.

  • 저도 작은 사업을 할 때 자금 문제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초기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는데, 그때처럼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