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라길에서 저녁 먹고 길을 잃을 뻔했다

서순라길에서 저녁 먹고 길을 잃을 뻔했다

서순라길의 그 북적임

주말에 친구랑 종로3가역에서 만났다. 서순라길이 요즘 하도 핫하다고 해서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더라. 돌담길을 따라 걷는 건 좋은데, 가는 곳마다 예약이 다 찼거나 대기가 너무 길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적당히 조용한 곳에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곳은 루프탑이 예쁘다고 해서 올라가 봤는데, 바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불어서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시간만 30분 넘게 버린 것 같다. 결국 적당히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작은 와인바에 들어갔다.

와인바 가격과 현실적인 맛

들어가서 메뉴판을 봤는데, 잔 와인 가격이 한 잔에 1만 5천 원에서 1만 8천 원 선이었다. 아주 저렴한 건 아니지만,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다. 글라스로 스파클링 하나랑 레드 하나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서 놀랐다. 같이 시킨 안주는 대충 2만 원대 초반이었는데, 양이 정말 적어서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광장시장에 가서 빈대떡이나 먹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광장시장은 요즘 힙해져서 팝업도 많이 하고 루프탑 스타일로 꾸며놓기도 한다던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긴 엄두도 안 났다. 그래도 와인바는 조용해서 대화하기는 좋았다.

을지로랑은 또 다른 분위기

을지로 와인바들이랑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을지로는 좀 더 어둡고 힙한 느낌이라면, 서순라길은 담벼락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랄까.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을지로의 그 투박한 느낌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와인을 마시면서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결국 우리 둘 다 ‘다음엔 그냥 집 근처에서 먹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웨이팅하고,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게 맞나 싶더라. 그렇다고 그 시간이 즐겁지 않았던 건 아닌데, 뭐랄까 체력 소모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지쳐버린 귀갓길

저녁 8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루프탑이 있는 곳들은 이미 만석이었고, 2차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로3가역까지 걸어가는 길도 너무 복잡해서 그냥 명동 쪽으로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만 보가 넘게 걸었더라. 낮술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게 만나서 서두르기만 했던 게 아쉬웠다. 다음에는 그냥 평일에 휴가 내고 낮에 와서 여유 있게 즐기는 게 나을 것 같다. 저녁의 서순라길은 나한테는 너무 기운 빠지는 장소였다.

여전히 남은 아쉬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를 몇 캔 샀다. 와인바에서 먹은 건 사실 기억에도 잘 안 남는데, 편의점 맥주를 마시면서 집에 오는 길에 본 야경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서순라길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여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냥 ‘유명한 곳에 다녀왔다’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뭔가 방법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건지 조금 헷갈린다. 아마 당분간은 종로 쪽으로 굳이 술 마시러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댓글 1
  • 돌담길 걷다가 길 잃을 뻔한 경험 비슷한 적 있어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여유를 즐기기 힘들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