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정역 근처 골목길을 헤매다 발견한 맥주집
지난주 평일 저녁이었나, 갑자기 시원한 맥주가 너무 당겨서 합정역 근처를 배회했다. 사실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평소에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합정역 주변이 워낙 수제맥주집이 많긴 한데, 막상 들어가려고 하면 고민이 된다. 왠지 너무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거나, 아니면 너무 비싸기만 하고 맛은 평범할 것 같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한 30분 정도 골목을 서성였을까,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자그마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메뉴판을 봐도 무슨 맛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때
가게에 들어서니 맥아 특유의 쿰쿰한 향이 훅 끼쳐왔다. 앉자마자 메뉴판을 건네받았는데, 요즘 맥주집들이 다 그렇듯 IPA, 페일에일, 스타우트 같은 단어들이 즐비했다. 사실 나는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름만 보고 맛을 정확히 구별하는 수준은 아니다. 보통은 메뉴판 설명에 ‘열대과일 향’이나 ‘쌉쌀한 뒷맛’ 같은 문구가 적혀 있어서 대충 고르는 편인데, 이곳은 유독 설명이 불친절했다. 그냥 이름만 적혀 있거나, 아니면 무슨 홉을 썼는지 전문 용어만 가득했다. 옆 테이블은 벌써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나 혼자 멍하니 메뉴판을 보고 있으니 괜히 쭈뼛거려졌다.
의외로 만 원이 넘지 않는 작은 행복
결국 가장 위에 있는 것부터 주문했다. 한 잔에 7,500원 정도였나. 요즘 술집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마실 가격대도 아니었다. 맥주가 나왔는데 거품이 꽤 부드러웠다. 한 모금 들이켜니 메뉴판 설명처럼 복잡한 향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일반 생맥주보다는 깔끔했다. 여기서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니 좀 긴장이 풀렸다. 대구에서 왔다는 옆자리 일행들은 창업박람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술집 프랜차이즈나 맥주 브랜드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요즘은 술집 하나를 내는 것도 정말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조용한 밤길을 걸으며 든 생각
한 잔을 더 마실까 하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바람이 선선했다. 합정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마주친 다른 가게들은 밖에서 봐도 활기가 넘쳤다. 어쩌면 나는 더 맛있는 맥주를 찾으려 하기보다, 그냥 그날의 기분에 맞는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내가 마신 맥주가 다른 브랜드랑 비교해서 얼마나 특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날따라 목 넘김이 좋았고, 내가 찾던 분위기랑 아주 살짝 어긋났지만 나쁘지 않았던 것, 그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다.
다음엔 집에서 마실까 고민되는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캠핑용품 사이트에서 봤던 맥주잔이나 하나 살까 하다가 말았다. 밖에서 마시는 맥주가 맛있는 건 사실인데, 가끔은 이렇게 고르는 과정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음번에는 그냥 집 앞 슈퍼에서 파는 캔맥주나 몇 개 사서 조용히 마시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또 막상 금요일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서 남들이 마시는 맥주 구경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이런 마음이 정리가 잘 안 되는데, 사실 정리할 필요도 없는 문제이긴 하다.
이름 모르는 곳에서 찾은 맥주 맛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설명이 부족해서 더 애매해지는 건 싫다.
IPA, 페일에일 같은 단어들만 있으면 그냥 마시는 걸로 결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홉 종류를 알면 좀 더 신중하게 고를 수 있겠네요.
홉 종류 설명이 너무 전문적이라 오히려 골라먹기가 더 어려워졌네요.